'계유정난' + 1
- 비정한 왕 영락제와 세조, 비운의 왕 건문제와 단종 45 2015.12.31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말은 예로부터 끈끈한 가족간의 유대를 나타내는 말로 쓰여왔는데요. 때로는 피보다 권력이 더 진한 경우가 역사적으로 상당수 있었었답니다. 이번엔 권력을 가지기 위해 가족을 버린 두 명의 인물을 소개해볼까 해요.
명나라 영락제조선 세조
바로 중국 명(明)나라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한 3대황제 영락제와, 조선 초기의 국가 체제를 완비한 7대왕 세조 입니다. 이 두 명의 제왕들은 모두 이미 왕위에 올랐던 조카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하는 비정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참 아이러니컬 하게도 영락제와 세조 모두 각각 초기 명나라와 조선의 기틀을 다잡은 능력있는 왕으로 역사적으로 평가되고 있답니다.
명나라 건문제조선 단종
숙부인 영락제와 세조에게 쫓기 듯이 왕위를 찬탈당한 비운의 주인공들이 각각 명나라 2대황제 건문제와, 조선 6대왕 단종이랍니다. 사극이나 소설의 단골 주제로서 한번쯤은 들어본 낯이 익은 이름들일 거라고 생각되네요. 건문제나 단종 모두 비슷한 과정으로 최후를 맞이하였답니다.
건문제는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장손자 인데요. 황태자였던 아버지가 죽자 주원장은 본래 후계자로 4남인 연왕 주체(영락제)를 생각하였지만, 적통의 원칙을 주장하는 신하들의 반대로 주윤문(건문제)을 황태손으로 책봉하게 되죠.
건문제는 온화한 성품으로 황위에 오른 후에 필연의 과정이었던 숙부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소극적으로 임했는데, 결국 연왕 주체(영락제)가 '정난의 변'을 일으키게 된답니다. 북경을 기반으로 북방의 풍부한 전투경험을 가진 군대를 보유한 연왕 주체의 반란군이 오히려 우세했었었죠.
[kokjin.blogspot.com]
무엇보다 뒤가 없었던 연왕 주체(영락제)에 비해 '숙부님의 생명까지 위협해서는 안 된다.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마라' 라며 유약한 모습을 보인 건문제의 태도가 문제였었다고 해요. 실제로 건문제의 관군이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절호의 기회를 놏치고 만답니다.
영락제 [panoramio.com]
3년간의 전쟁 끝에 수도 남경을 함락시킨 후, 1402년 마침내 연왕 주체는 영락제로 황제의 자리에 등극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수도를 본거지였던 북경으로 천도를 하게 되죠. 건문제는 남경이 함락되기 직전 불을 지르고 이후 행적이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행방이 묘연하다 보니 건문제의 최후에 대해선 각종 설들이 많은데요. 불에 타 죽었다, 양자강에 투신했다, 도사가 되었다, 승려가 되었다가 나중에 신분이 알려져 북경에서 살았다 등등.
건문제를 찾기위한 여정?[notcomment.com]
심지어는 역사적인 대항해였던 정화의 대원정 조차도 사라진 건문제를 찾기 위함이었다는 설도 있다고 해요. 건문제의 최후는 명나라 최대의 미스터리로서 각종 문화장르의 대표적인 주제로 다루어졌죠.
KBS 드라마 왕과 비' 단종
건문제의 닮은꼴인 단종은 세종대왕의 왕세손으로서 어린시절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었답니다. 처음부터 세종대왕은 병중인 자신과, 병약한 첫째 아들 문종으로 인해 어린 이홍위(단종)의 미래에 대해 많은 걱정을 했었는데요.
특히,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했던 자신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을 꼭 닮은 둘째 아들 수양대군 이유(세조)에 대해 걱정이 많았고, 김종서 등 심복 신하들에게 단종을 부탁하게 됩니다.
신숙주숙주나물
이 중 한 명이 세종대왕이 아꼈던 신숙주 였는데, 그는 후에 변절하여 수양대군(세조)의 편에 가담하게 되죠. 후대에 이를 조롱하며 빨리 쉽게 맛이 변하는 녹두나물에 숙주나물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답니다.
세종대왕의 뒤를 이은 아버지 문종이 2년여 만에 요절하고 단종이 왕위에 오르지만, 수양대군(세조)은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장악한 뒤 1455년 사실상 반강제로 조카 단종으로 부터 양위를 받아 왕이 되는데요.
KBS 드라마 왕과 비' 수양대군
정통을 중요시하는 조선의 유교사상에서 반하는 행동으로 집권 초기 많은 반발을 사게 됩니다. 세종대왕의 유지를 이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당한 여섯명의 충신을 이르는 사육신 사건이 가장 유명하죠.
KBS 드라마 사육신
이래저래 단종을 명목으로 한 반정이 이따르자 세조는 결국 조카 단종에게 죽음을 내리게 된답니다. 자살했다는 기록과 사약을 내리러 간 의금부 도사가 망설이자 모시던 종복이 목졸라 죽였다는 기록도 있는데요.
단종묘 장릉 [78ktx.co.kr]
세조의 노여움이 무서워 방치되었던 단종의 시신은 강원도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흥도가 수습을 하게되고, 그는 벼슬을 내놓고 숨어 살았다고 해요. 영조 때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정문이 세워지기도 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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