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 2

천년역사의 동로마 비잔틴 제국 史 <하>

'이야기속 에피소드'에서 '멜로요우' 작성함 2015. 7. 13. 12:38

이 글은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천년역사의 동로마 비잔틴 제국 史 <상>]

 

비잔틴제국 몰락

[출처 : http://www.iranvisitor.com/history/arab-conquest-history]

라틴제국 

4차 십자군 콘스탄티노플 점령4차 십자군 콘스탄티노플 점령

곡창과 인력의 보급지인 아나톨리아를 잃은 비잔틴제국은... 다시는 회복되지 못하였답니다. 어쩌면 그 이후의 역사는 처절한 생존의 역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였죠.

 

지중해무역까지 제노아와 베네치아 상인들에게 주도권을 내줌으로써 샤를마뉴 대제에게 '금의 도시'라고 까지 불렸던 보배로운 도시 콘스탄티노플은 종막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합니다.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점령(라틴제국)은 사실상의 확인사살이었죠.

 

라틴제국1204년 쪼개어진 비잔틴제국

비잔틴제국 최후의 영토1400년 비잔틴제국 최후의 영토

콘스탄티노플을 이후 수복하긴 하였지만 하였지만, 이제는 이름만 로마제국의 적통으로서 찬란할 뿐 이었답니다. 한 때 수십만명에 달하는 세계 제일의 도시 중 하나였건만 겨우 몇 만명이 채되지 않는 인구만 남게 되었고, 

 

1453년 오스만제국과의 최후의 공방전에서 8만명의 이슬람군대에 대항해 동원된 군대는 고작 7천명 정도 밖에 안되었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2개월이나 끈질기게 버텨낸 마지막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정복자 메흐메드 2세에게 칭송받았다고 합니다.

 

비잔틴제국 오스만 침공기상천외한 골든혼 진입작전 

비잔틴제국 최후의 전투비잔틴제국 최후의 전투

콘스탄티노플 함락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메흐메드 2세

콘스탄티노플과 비잔틴제국은 로마제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중세 유럽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었던만큼, 그 상실감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반면 이슬람권에서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이후 예루살렘과 함께 종교적 지상 최대의 목표였었던 만큼 무려 800년 넘게 이어져왔던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메흐메드 2세를 위대한 술탄으로서 떠받들게 되었답니다. 공교롭게도 비잔틴제국은 건국자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똑같은 이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에게서 그 역사가 끝나게 됩니다.(실제로 당시 이와 관련해서 많은 풍문이 떠돌았다고 해요)

 

메흐메드 2세 어머니메흐메드 2세 어머니 후마 하툰

[출처 : http://www.nationstates.net/page=dispatch/id=245421]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내부최후의 미사가 치뤄졌던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메흐메드2세의 어머니가 카톨릭출신 이었다는 점인데요. 그래서인지 다른 이슬람 지배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린 모습을 보였고, 그렇기에 그나마 지금의 이스탄불에 비교적 많은 비잔틴제국의 유산들이 남아있게 되었답니다. 강제적인 개종 및 무조건적인 파괴를 일삼치 않았던거죠(어디까지나 다른 지배자에 비해서;;).

 

그 유명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도 모스크로 개조하여 아야 소피아 자미로 남겨져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도 하기아 소피아에서는 최후의 미사가 치뤄졌다는 가슴아픈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답니다.

 

이스탄불한 때는 콘스탄티노플이었지만...

블루모스크블루모스크

유럽여행하면 보통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많이 떠올리는데요. 저는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터키 이스탄불에 꼭 가보고 싶네요. 천년역사의 비잔틴제국의 영화와 아픔을 모두 지니고 있는 그 곳..

 

비잔틴제국 심볼비잔틴제국 심볼

아름답기로 소문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을 가면 마지막 기도를 올리던 비잔틴제국민들의 그 간절함이 느껴질까요. 아니면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에 발걸음을 디딘 메흐메드2세의 감개무량함이 느껴질까요. 이걸 알려면 직접 가봐야겠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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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역사의 동로마 비잔틴 제국 史 <상>

'이야기속 에피소드'에서 '멜로요우' 작성함 2015. 6. 28. 02:24

로마제국의 동서 분열

콘스탄티누스 대제

세계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속했었던 제국을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을 아시나요? 초대황제인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으로 천도한 이후 330년 부터 1453년 오스만제국의 메흐메드 2세에게 정복당하는 그날 까지 무려 천년이 넘도록 존재했었답니다.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름을 따 콘스탄티노플로 개명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스탄불로 불리고 있죠.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노플

[출처 : http://fotogaleri.hurriyet.com.tr/galeridetay/79386/2/1/bizans-doneminde-istanbul]


콘스탄티노플은 제2의 로마로 자리매김 하였고, 480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이후에는 명실상부한 중세유럽의 심장으로서 그 역할을 하게 된답니다. 이는 아시아와 유럽,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지리적 특징이 크게 작용하였죠. 심지어 '전 세계 부의 2/3이 콘스탄티노플에 있다' 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런 지리적 특징은 국력이 강성했을 때 이점으로 작용했지만, 쇠약해졌을 때에는 크나큰 약점이 되었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비잔틴제국 전성기

비잔틴제국의 역사는 그야말로 정복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정복의 주체자와 피해자로서 두 가지 모두의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로마제국의 적통으로서 (독일/오스트리아 지역에 이어졌던 신성로마제국은 형식상의 계승자) 과거 로마제국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수많은 정복전쟁이 이어졌으며 6세기 유스타니아누스 대제 때에는 대부분의 영토를 회복하기도 했었답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테오도시우스 성벽

테오도시우스 성벽

반대로 로마제국을 계승하며 이어진 그 상징성과 그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이른바 비잔틴 양식으로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문화를 꽃 피웠던, 콘스탄티노플을 탐낸 수많은 외침이 이어지기도 했었죠. 어쩌면 이 때문에 역사상 가장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꼽혔던 테오도시우스 삼중성벽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성벽과 바다를 낀 천해의 요새로서 훈족, 불가리아, 슬라브족, 십자군, 아랍 등 수많은 외침을 끝내 이겨내지만 제국은 점차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만지케르트 전투만지케르트 전투

미리오팔케른 전투미리오팔케른 전투

[출처 : http://eng.majalla.com/2012/10/article55234527/battle_ottomans]

[출처 : http://public.fotki.com/whereishawkins/travels/2010/istanbul1210/istanbul-military-museum/img-0071-jpg.html]


비잔틴제국의 쇠락의 방아쇠를 쏜 것은 1071년 벌어졌던 아나톨리아(소아시아)를 두고 벌어졌던 셀주크 제국과의 만지케르트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2배에 달하는 병력 우위에도 처참한 대패를 당하게 되었고, 심지어 황제가 포로로 잡히기도 했답니다. 이는 십자군운동의 서막이기도 했었죠. 이후 1176년 미리오케팔른 전투에서도 셀주크 제국에 참패를 당하게 되고 비잔틴제국은 이후 다시는 아나톨리아의 지배권을 되찾아오지 못했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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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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