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 9

세계사 속 대표 바람둥이 난봉꾼들 Pick.13

'제멋대로 우주랭킹'에서 '멜로요우' 작성함 2020. 7. 21. 16:07

욕은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욕망 중 하나인데요. 때로는 이것이 색욕(色慾)으로 발전되어 많은 스캔들을 만들어내곤 하죠. 재미있는 건 그런 색욕이 긍정적인 산물을 낳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번엔 이러한 색욕을 마음껏 뽐내며(?) 각계 각층에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크게 활약했던 세계사 속 대표 바람둥이 난봉꾼들 13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의외의 인물이 등장할지도?!



카사노바

Giacomo Girolamo Casanova (1725~1798)

Giacomo Girolamo Casanova[gpsmycity.com]

세계사 속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 난봉꾼으로 그 이름이 사실상의 동격의 대명사로 사용될 정도인데요. 그의 자서전 회상록('Histoire de ma vie)에는 무려 122명의 여성과의 사랑이야기가 적혀있답니다.


카사노바가 세계적인 바람둥이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다재다능함(성직자, 작가, 시인, 성직자, 음악가, 과학자, 외교관 등)과 유럽의 왕족들과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교제범위가 컸죠. 그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나는 여인을 사랑했다. 하지만 내가 진정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



돈 후안

Don Juan (17세기)

Don Juan[historydaily.org]

서양사에서 카사노바와 함께 바람둥이의 양대 산맥으로 명망높은 돈 후안은 사실 실존인물이 아닌 스페인의 전설로서 전해져 오는 인물인데요. 그 위상은 햄릿, 돈키호테, 파우스트와 함께 유럽 문학 4대 캐릭터로 꼽힐 정도죠.


돈 조반니, 돈 주앙 등등 유럽 예술 문학계의 수많은 작품에서 재해석되며 알려졌는데 가장 유명한 건, 1787년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로 이 오페라에서 돈 후안은 무려 2065명의 여성을 정복(?)했답니다. 오죽하면 돈후안 증후군'이란 병명까지 생겼을까요?



바이런

George Gordon Byron, 

6th Baron Byron (1788~1824)

George Gordon Byron, 6th Baron Byron[wikipedia.org]

BBC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으로 유명한, 낭만주의 시인 6대 조지 고든 바이런은 잘생긴 외모로도 널리 알려졌는데요. 그 덕분인지 화려하고 난잡한(?) 비화들도 숱하게 남겨져 있답니다. 


귀천도, 관습도, 남녀도 가리지 않을 정도였는데요. 이복누나 '어거스터 리'와의 근친상간 루머와, 프랑켄슈타인의 저자이자 그의 스폰서였던 '메리 셸리'의 의붓여동생 '클레어 클레어몬트'와의 스캔들, 영국 총리 부인이 될 '캐롤라인 램'과의 불륜설이 유명하죠.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BC 100~BC 44)

Gaius Julius Caesar[tiny-librarian.tumblr.com]

고대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 제국사의 전환점을 마렸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세계사 속 가장 유명한 미인 중 하나인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으로도 유명한데요. 사실,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의 수많은 여인 중 한 명이었을 뿐이랍니다.


전쟁 후 개선식에서 그의 군단병들이 "로마의 남편들이여 아내를 감춰라. 대머리 난봉꾼이 나가신다"라고 경애(?)의 의미로 외칠 정도로 유명한 유부녀 난봉꾼이었죠. 심지어 그를 암살한 브루투스도 그의 정부였던 세르빌리아의 아들이었답니다



허균

許筠 (1569~1618)

허균 許筠[wikipedia.org]

저 유명한 '홍길동전'의 저자로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가 바로 허균인데요. 여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허난설헌도 바로 그의 누이이죠. 허균은 홍길동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급진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허균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난봉꾼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기생들과의 스캔들이 숱했다고 해요. 하지만 정작 가장 유명했던 스캔들의 주인공인 기생 '매창'과는 육체관계가 없는 플라토닉 러브로서 낭만적인 면목을 보이기도 했답니다.



히카루 겐지

ひかる げんじ (11세기)

ひかる げんじ[Yamato Waki, Hikaru Genji / zerochan.net]

일본 역사를 대표하는 바람둥이인 히카루 겐지는 사실 '돈 후안'이 그랬듯이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인데요. 헤이안 시대에 집필된 고전문학 '겐지모노가타리'의 주인공이랍니다.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주로 일본왕이 가장 아끼는 아들로 등장하죠.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어 수많은 스캔들을 양산(?)해내었는데요. 그의 행적은 54첩이라는 겐지모노가타리의 방대한 분량에서 짐작될 수 있을 정도... 계모, 숙모, 형제 약혼녀, 부하의 처와 딸, 친구 애인과 딸, 사촌, 과부와 딸, 남자하인 등등



피카소

Pablo Ruiz Picasso (1881~1973)

Pablo Ruiz Picasso[greennewsupdate.com]

세계사에 길이 남을 미술계의 거장 피카소는 희대의 바람둥이 난봉꾼이기도 한데요. 그의 여성편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죠. 공인된 피카소의 여인은 7명이었는데 이들과 동거, 결혼, 이혼을 반복했답니다. 그 외에도 그의 손을 거친 여인만 수백명이 된다는 소문이...


그의 정력은 나이와 무관했으며 특히 연하의 여성들을 좋아했는데요. 40대~70대 구간에도 10대, 20대의 여성과 인연을 맺곤 했답니다. 아이러니한 건 그러한 왕성한(?) 관계들이 그의 왕성한 작품활동(1만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 ;;



왕건

王建 (877~943)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한국사 속에서도 가장 부인이 많기로 유명한 왕인데요. 무려 29명의 부인을 두었는데, 사실 이는 그의 난봉꾼 기질 때문이라기 보다는 불안한 왕조의 기반 마련을 위한 혼인정책(지방 호족과 공신의 딸)의 일환이었답니다. 

의도야 어쨌든 무려 총 34명(25남 9녀)의 자녀를 두는 정력을 보여주었는데요. 이런 혼인정책은 소기의 목적을 거둘 순 있었으나, 왕건의 사후, 왕위를 쟁탈하기 위한 치열한 다툼의 빌미가 되고 말았죠.


교황 알렉산데르 6세
Alexander PP. VI (1431~1503)

Alexander PP. VI[wikipedia.org]

세계사 속 바람둥이 난봉꾼에 가톨릭 교회의 수장 교황이 이름을 올렸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르네상스 시대를 풍미했던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알려졌는데요. 그의 문란한 사생활과 별개로 탁월한 외교력과 정치력을 발휘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답니다.


젊은 성직자 시절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렸으며 알려진 자식만 8명(알려지지 않은 자식은 더 있을 거라고..)이나 있었다고 하는데요. 귀족의 딸, 하녀, 창녀, 배우 등 각계의 다양한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답니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바티칸의 네로 황제' 였을까요.




라파엘로

Raffaello Sanzio (1483~1520)

Raffaello Sanzio[wikipedia.org]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의 3대 예술 거장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데요. 예술적 재능만큼이나 여성편력 기질로도 유명하답니다. 젋은 나이에 요절한 것도 문란한 사생활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을 정도죠.


La_Fornarina[wikipedia.org]

순수함과 관능미를 가진 성모 마리아를 묘사한 라파엘로의 대표작 '라 포르나리나'의 모델인 '마르게리타 루티'와는, 이미 추기경의 조카와 약혼을 했음에도 교제를 이어갔답니다. 문제는, 그녀와 동거 중에도 또 다른 여자들과 사랑을 끊임없이 즐겼다는 것...;;



자코모 푸치니

Giacomo Puccini (1858~1924)

Giacomo Puccini[wikipedia.org]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 하지만 그에겐 오페라계의 카사노바라는 또 하나의 별칭이 붙어져 있는데요. 뛰어난 패션 감각과 호화로운 생활에 매료된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답니다.


"모든 여성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돼,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 되고 또 창작을 향한 욕구로 이어지니까"라며 자신의 바람끼를 정당화(?)하기도 했는데요. 불륜으로 친구 아내와 결혼을 하기도 했으며, 음악계의 디바들과 숱한 염문을 뿌렸죠. 


강건왕 아우구스트 2세
August II (1670~1733)

August II[wikipedia.org]

신성로제국의 작센 선제후였으며, 폴란드 왕국의 국왕 아우구스트 2세에게는 강건왕! 이라는 독특한 칭호가 잇따르는데요. 이름에 걸맞게 낮의 힘과 함께 밤의 힘(?)도 장사였다고 해요. 세계사 상 최악의 바람둥이 난봉꾼 왕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답니다.


언제나 여자들을 가까이에 둔 결과 무려 354명의 사생아가 태어났으며, 심지어 그의 여인 중엔 자신의 딸도 있었을 정도...;;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에게는 포르노 그림을 선물한 일화도 있죠. 여성편력가들이 으레 그렇듯 예술을 좋아했고 후원도 많이 했답니다.



술탄 물레이 이스마일

Moulay Ismail (1645~1727)

Moulay Ismail (1645~1727)[wikipedia.org]

아우구스트 2세가 강건왕으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하지만 진정한 정력가는 '다산의 왕' 모로코 술탄 물레이 이스마일이랍니다. 기네스북에 기록된 888명의 자녀도 놀랍지만, 프랑스 외교관의 기록은 우리를 더 놀랍게 만드는데요.


무려 4명의 부인과 500여 명의 첩 사이에서 1171명!! 의 자녀를 두었다는 것인데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32년간 하루 평균 0.83~1.43회의 성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사생활과 별개로 그는 매우 강력한 철권통치를 했었다고 합니다.



바람둥이 난봉꾼"바람피기만 해봐?! 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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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역사라고 알려진 기나긴 한국 역사 기록 속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좋은 의미로, 때론 나쁜 의미로 등장하고 있는데요.


영웅이든 역적이든 그 과정 속에는 반드시 중요한 계기가 있기 마련이랍니다. 이번엔 그 계기 중에서도 배신을 통해 한국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 12명을 소개하려고 해요 :D



위만

위만[yes24.com]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에 반하다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했던 위만은, 고조선 준왕의 신임을 받아 요동 방어 임무를 받았지만, 유망민 세력을 모아서 준왕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답니다. (기원전 194년)


기존의 고조선 왕조와 분리하기 위해 '위만조선'이라고 부르는데요. 당시 혼란스러웠던 동북아 정세를 잘 이용하여 성세를 누렸답니다. 


고발기

고발기의 난억울하게 왕위를 뺏긴 고발기 [blog.naver.com/skkim12345]

고구려의 신대왕의 둘째 아들인데요. 큰 형인 고국천왕이 죽고나서 왕후에게 속아서 동생(산상왕)에게 왕위를 뺏기자,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말았죠.


이후, 한나라 요동의 공손탁의 힘을 빌려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또 다른 동생인 계수에게 패배했는데요. 이때 계수의 꾸짖음에 부끄러움을 느껴 끝내 자살했답니다.(197년)


진흥왕

백제 성왕과 신라 진흥왕신라 진흥왕에 배신당한 백제 성왕 [contents.history.go.kr]

삼국시대 최강국이었던 고구려에 맞서 백제의 성왕과 신라의 진흥왕은 함께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유역을 나눠 가졌는데요. 하지만 진흥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백제 성왕을 배신하여 한강 전역을 차지해 버렸답니다.


당연히 백제 성왕은 복수에 나섰지만, 치열했던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죠.(554년) 진흥왕의 배신은 결과적으로 이후, 신라의 삼국통일의 기틀이 되었답니다.


임자

백제 의자왕 시절 대신이였던 임자는 신라의 관리였던 조미압이라는 자를 종으로 부렸는데, 조미압을 통해 신라의 김유신에게 포섭되어 간첩활동을 하며 신라의 백제 정복에 큰 힘이 되었답니다.

예식진
백제 의자왕의 또다른 배신자인데요. 백제의 대장군이었지만 의자왕이 최후의 항전지로 삼았던 웅진성에서 오히려 의자왕을 붙잡아 당나라에 투항해 버렸죠. 이후, 그는 당나라에서 고위직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답니다.

연남생

연남생[지니스쿨 역사 Youtube]

고구려 말기의 영웅이었던 연개소문의 장남으로 2대 대막리지(최고 권력직)가 되었지만, 동생들인 연남건, 연남산과의 권력 다툼에 밀려 당나라에 투항했는데요. 이때, 과거 고구려의 수도였던 요충지 국내성이 당나라에 넘어가게 되었답니다.


당나라 군대 총사령관과 협력하여 고구려 정복에 앞장을 섰고, 끝내 고구려의 멸망을 가져왔죠. 이후, 과거 고구려의 만주 영토를 관할하는 당나라의 안동도호부 관리로서 생을 마감했답니다.




왕건

궁예와 왕건궁예와 왕건 [KBS드라마 '태조 왕건']

후삼국시대의 최후의 승자 고려 태조 왕건은 본래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의 장수였는데요. 최고 벼슬인 시중에까지 올랐죠. 문제는 명군이었던 궁예가 폭군의 전횡을 일삼기 시작했던 것(그 유명한 관심법...)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 (궁예의 폭정)


결국, 이를 보다 못한 왕건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기에 이르렀답니다. (918년)


홍다구

홍다구[jejusori.net]

고려 개국공신 가문의 후손으로 대대로 고려의 벼슬을 지냈지만, 할아버지 홍대순과 아버지 홍복원은 몽골의 침략에 앞장섰죠. 홍다구는 원나라의 관직을 이어받은 뒤, 고려에 엄청난 해악을 끼쳤답니다.


원나라 쿠빌라이의 총애를 등에 업고서 고려왕에게 배례도 하지 않은 것은 기본, 대몽항쟁을 하던 삼별초의 난 진압, 고려의 국력을 동원한 일본정벌 시도 등등... 


이성계

이성계 위화도 회군위화도 회군 [네이버 지식 백과]

고려 말기 혁혁한 공을 세운 대장군이었던 이성계는 권문세족의 횡포에 불만을 품은 신진사대부들과 가까워졌는데요. 결국, 떠밀리 듯이 떠났던 요동 정벌 중 압록강에 이르러 한국 역사 속에서 그 유명한 '위화도 회군'을 감행한답니다. 


막강한 군권을 지닌 그의 반란에 고려 조정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말았고, 정권을 장악한 뒤 얼마 안가 조선을 건국하기에 이르렀죠.(1392년)


수양대군(세조)

수양대군(세조)와 단종[KBS 역사저널 그날]

세종대왕의 아들로서 그에 걸맞는 능력을 보였던 수양대군은, 세종에 이은 문종이 병약하여 2년만에 승하하고 12살의 조카 단종이 즉위하자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답니다.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경쟁하던 동생 안평대군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뒤, 얼마 안가 단종을 밀어내고 세조로 등극하였는데요.(1455년) 숙부에게 밀려난 소년왕의 기구한 운명은 오랫동안 사극의 단골 소재가 되었죠.


국경인

국경인[채널A Youtube]

한국의 가장 아픈 역사 중 하나인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협력했던 순왜의 대표인물인데요. 함경도로 왜군이 진격해오자 반란을 일으켜 조선의 왕자와 관리들을 일본 선봉군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기고 벼슬을 받았죠. 이후, 의병에 의해 붙잡혀 참수되었답니다.


이완용

이완용[wikipedia.org]

한국 역사 속에서 민족의 배신자로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인데요.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의 고위직에 있었지만 을사조약, 한일병합조약 등 갖가지 친일행적으로 끝내 대한제국의 폐망 및 일제강점기의 서막을 올렸죠.


극히, 일부긴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대세 속에 악역을 자처하며 최소한의 이권을 지켜낸 역사의 희생자라는 평가도 존재한답니다. 조선 왕실의 명맥이 이어진 것이 대표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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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서는 학창시절 애증의 존재였는데요. 공부를 잘 하려면 필수적으로 들여다봐야 하지만, 교과서를 펼치기만 하면 잠이 오는 경우가 참 많았죠; 하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교과서도 학창시절의 소중한 추억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문제는 그 때의 교과서를 이제 내 손에 없다는 것 :( 저와 같은 아쉬움을 간직한 분들을 위해 우리 나라의 옛날 교과서 역사를 표지로 되돌아볼까 해요. 교과서 표지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도 있죠. 교과서 박물관에서 찾아본 시대별 대표적인 교과서들로 옛 추억도 떠올려보시길 바래요 :D



1930년대 교과서 역사 표지

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영어는 이미 주요한 외국어로 자리잡았었나 봐요.

1935년 영어 교과서 역사 표지 A NEW CONCISE SCHOOL GRAMMAR1935년 영어교과서, A NEW CONCISE SCHOOL GRAMMAR(REVISED EDITION)


1940년대 교과서 역사 표지

독립 직후의 우리 나라 교과서들에서 눈에 띄이는 단어는 '조선' 아직 대한민국이라는 국명보다는 조선이라는 국호가 익숙했던 시기였나 봅니다.

1946년 교과서 역사 표지 조선지리1946년 조선지리

1948년 교과서 역사 표지 바둑이와 철수(국어 1-1)1948년 바둑이와 철수(국어 11) : 최초의 국정교과서

1948년 최초의 국정 교과서 바둑이와 철수1948년 바둑이와 철수(국어 1-1) [if-blog.tistory.com]

1948년 교과서 역사 표지 중등동물1949년 중등동물

1948년 교과서 역사 표지 초등 노래책1948년 초등 노래책 5학년 소용

1949년 교과서 역사 표지 여러 곳의 사회 생활 21949년 여러 곳의 사회 생활 2

1949년 교과서 역사 표지 여러 곳의 사회 생활 3-21949년 여러 곳의 사회 생활 3-2


1950년대 교과서 역사 표지

6·25 직후의 교과서들의 셈본', 고장생활' 같은 과목명들이 낯설게 느껴지네요. 초등 교과서의 표지에 그림이나 사진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모습입니다.

1952년 교과서 역사 표지 셈본 2-21952년 셈본 2-2

1953년 교과서 역사 표지 고장생활(사회생활) 2-11953년 고장생활(사회생활) 2-1

1953년 교과서 역사 표지 국어 2-21953년 국어 2-2

1956년 교과서 역사 표지 착한생활 21956년 착한생활 2

1957년 교과서 역사 표지 사회생활 5-21957년 사회생활 5-2

1959년 교과서 역사 표지 그림있는 즐거운 영어1959년 그림있는 즐거운 영어


1960년대 교과서 역사 표지

1960년대의 교과서에서는 아직 옛스러운 우리 나라와 현대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이 혼재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답니다.

1960년 교과서 역사 표지 산수 3-21960년 산수 3-2

1961년 교과서 역사 표지 음악 11961년 음악 2

1963년 교과서 역사 표지 고등생물1963년 고등생물

1964년 교과서 역사 표지 미술 31964년 미술 3

1966년 교과서 역사 표지 사회4-21966년 사회 4-2

1967년 교과서 역사 표지 새로운 과학 21967년 새로운 과학 2


1970년대 교과서 역사 표지

북한과 대립하며, 반공의식이 높았던 시기인 만큼 '승공 통일의 길' 같은 자극적인 교과목명과 바른생활 표지로 군사무기가 등장한 것이 눈에 띄이네요.

1970년 교과서 역사 표지 글본 51970년 글본 2

1970년 교과서 역사 표지 산수 2-21970년 산수 2-2

1972년 교과서 역사 표지 바른생활 6-11972년 바른생활 6-1

1972년 교과서 역사 표지 승공 통일의 길1972년 승공 통일의 길

1975년 교과서 역사 표지 자연 4-21975년 자연 4-2

1978년 교과서 역사 표지 재외 국민 어린이용 한국의 생활1978년 재외 국민 어린이용 한국의 생활


1980년대 교과서 역사 표지

수출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던 사회의 역동적인 모습과 함께 '교련(군사관련 교육)'으로 여전히 분단국가로서의 한 단면이 도드라지는 느낌입니다.

1980년 교과서 역사 표지 국어 4-11980년 국어 4-1

1980년 교과서 역사 표지 도덕 5-21980년 도덕 5-2

1982년 교과서 역사 표지 사회 6-11982년 사회 6-1

1985년 교과서 역사 표지 교련 (남자용)1985년 교련 (남자용)

1987년 교과서 역사 표지 즐거운 생활 2-21987년 즐거운 생활 2-2

1987년 교과서 역사 표지 지구과학 II1987년 지구과학 II




1990년대 교과서 역사 표지

1990년대에는 각 지자체별 사회 문화를 소개하는 사회 교과가 생겼는데요. '광역시' 이전의 명칭이었던 '직할시'를 오랜만에 보았네요. 1995년엔 국민학교 ▶ 초등학교로 바뀐 역사적인 사건도 있었죠.

1993년 교과서 역사 표지 사회4-1(부산직할시)1993년 사회 4-1(부산직할시)

1994년 교과서 역사 표지 실험관찰 4-11994년 실험관찰 4-1

1996년 교과서 역사 표지 말하기듣기 1-11996년 말하기·듣기 1-1

1997년 교과서 역사 표지 생활의 길잡이 2-21997년 생활의 길잡이 2-2

1999년 교과서 역사 표지 수학 I1999년 수학 I

1999년 교과서 역사 표지 영어 41999년 영어 4


2000년대 이후 교과서 역사 표지

2000년대 이후의 교과서들은 표지 디자인부터 많이 과거의 촌티(?)가 사라지고 많이 세련되어진 모습들인데요. 각박해지는 사회의 모습 때문인지, '이웃'이라는 새로운 과목이 등장했답니다.

2004년 교과서 역사 표지  수학 1-나2004년 수학 1-나

2006년 교과서 역사 표지 사회과탐구 6-22006년 사회과탐구 6-2

2006년 교과서 역사 표지 지구과학Ⅱ2006년 지구과학 II

2011년 교과서 역사 표지 미술2011년 미술

2011년 교과서 역사 표지 슬기로운 생활 1-12011년 슬기로운 생활 1-1

2013년 교과서 역사 표지 이웃 22013년 이웃 2


"미래엔 교과서 박물관 : 우리 나라 유일의 교과서 박물관(in 세종특별자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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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_of_Kosovo,_Adam_Stefanović,_1870

역사 속에서 세계사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좌우했던 건 큰 전쟁들이었는데요. 가까이로는 제1~2차 세계대전이 사실상 현대의 세계정세를 결정지었다고 하죠. 고대 역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바꾼 역사 속 유명한 20개의 전쟁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엔 그 두 번째 시간(하편)입니다.


"이 글은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세계사를 바꾼 역사 속, 유명한 전쟁사 20개 (상편) ☜



콘스탄티노플 공방전(The Siege of Constantinople) 1453

Painting-The-Siege-of-Constantinople[wikipedia.org]

The-Siege-of-Constantinople-map(1410)[wikipedia.org]

1000년 넘게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의 수도로서 번영을 누리며, 이슬람의 거듭된 침공 속에서도 굳건했던 콘스탄티노플. 1453년 마침내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에 콘스탄티노플에 정복당하며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막을 내리게 되었답니다. 이 대사건은 세계사적으로 중세가 종식되고 근대가 시작되는 기점으로 평가받는데요.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 도래의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죠.


빈 공방전(The Siege of Vienna) 1529

Painting-The-Turkish-Siege-of-Vienna[wikipedia.org]

map-ottoman-expansion-1451-1566[attwiw.com]

숙원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후 오스만 제국은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요. 최전성기를 맞아 거침없이 동유럽으로 진격하던 그 행보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신성 로마 제국과의 치열했던 공방전에서 패배하며 마침내 세력 확장을 멈추게 되었답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 최강국으로서의 오스만 제국의 입지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죠.


카하마르카 전투(The Battle of Cajamarca) 1532

Painting-The-Battle-of-Cajamarca[wikipedia.org]

Painting-The-Battle-of-Cajamarca[meesterhenk.yurls.net]

대항해시대의 패자 스페인은 북아메리카를 정복한 이후 남아메리카로 향했는데요. 카하마르카에서 168명의 스페인 부대는 무려 8만에 달하는 잉카 제국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며, 잉카의 황제를 사로 잡았답니다. 이후, 잉카 제국은 얼마 안 가 몰락하고 말았고, 스페인은 엄청난 양의 황금을 독식하며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죠. 


칼레 해전(Naval Battle of Calais) 1588

Painting-Naval-Battle-of-Calais[wikipedia.org]

Painting-Spanish-Armada[wikipedia.org]

아메리카 대륙의 엄청난 부를 독식하며 초강대국으로서 큰 소리를 치던 스페인 왕국은, 이른바 '아르마다'라고 불리는 무적함대가 칼레 해전에서 프랜시스 드레이크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게 격파되며 그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답니다.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인, 칼레 해전은 영국이 스페인의 뒤를 이어 해양 강대국으로 발돔움 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죠. 


요크타운 전투(The Siege of Yorktown) 1781

Painting-The-Siege-of-Yorktown[wikipedia.org]

The-Siege-of-Yorktown[wikipedia.org]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은 1775년 부터 독립전쟁을 시작했는데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전쟁의 승리는 점차 가시화되었고 1781년 요크타운 포위전에서 미국-프랑스 연합군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 미국 독립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었답니다. 불과 2년 뒤, 영국은 미국 식민지의 독립을 승인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오늘날 세계 초강대국 미국 역사의 첫 출발점이 되었죠. 




트라팔가르 해전(The Battle of Trafalgar) 1805

Painting-The-Battle-of-Trafalgar[wikipedia.org]

The-Battle-of-Trafalgar-map[timetoast.com]

유럽 전역을 발 아래 두려는 프랑스 제국 황제 나폴레옹의 야욕은 마침내 영국에까지 뻗치기 시작했지만, 스페인 트라팔가르 곶에서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게 대파 당하고 말았답니다. 이는, 향후 100여 년동안 영국의 해상 지배권을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죠.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로 칼레 해전과 함께 영국 역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랍니다. 


워털루 전투(The Battle of Waterloo) 1815

Painting-The-Battle-of-Waterloo[wikipedia.org]

Napoleon's-French-Empire-map[wikipedia.org]

엘바섬에서 돌아온 프랑스의 위대한 정복왕 나폴레옹은 제국의 재건을 꿈꿨지만, 이를 막기 위해 전 유럽이 연합군을 결성하기 시작했는데요. 동맹을 와해하기 위해 벨기에 워털루로 향했던 나폴레옹은 오히려 연합군에게 대패하고 말았답니다. 이렇게 재집권 백일천하를 마감한 나폴레옹은 대서양의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되어,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죠.


영국 본토 항공전(The Battle of Britain) 1940

The-Battle-of-Britain[wikipedia.org]

The-Battle-of-Britain-London[asisbiz.com]

제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파죽지세로 유럽을 지배하에 두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기까지 이르렀는데요. 이제 다음 상대는 윈스턴 처칠의 영국. 독일은 막강한 공군 루프트바페를 이용해서 런던 대공습 등 침공을 시작했지만, 끝끝내 영국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실패했죠. 이는 동쪽의 소련과 싸워야 하는 독일에게 큰 부담이 되었고, 전쟁의 전환점이 된 계기 중 하나였답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The Battle of Stalingrad) 1942~1943

The-Battle-of-Stalingrad[rbth.com]

The-Battle-of-Stalingrad[wikipedia.org]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무려 약 200여 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데요.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을 정복하려던 나치 독일 히틀러의 야욕은 완벽히 분쇄되었으며, 이를 기점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은 완전히 뒤엎어지기 시작했답니다. 마침내 나치 독일의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거죠.


과달카날 전투(The Battle of Guadalcanal) 1942~1943

The-Battle-of-Guadalcanal[ibiblio.org]

The-Battle-of-Guadalcanal-map[videouroki.net]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은 미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과 솔로몬 제도 과달카날 섬의 육지와 주변 해역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요. 과달카날 섬은 일본의 태평양 전쟁 점령지의 최전선이었죠. 처절했던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국-연합군이 끝내 승리를 거두면서, 팽창 일로를 걷던 일본의 행보는 큰 제동이 걸리게 되었고, 태평양 전쟁의 주도권은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답니다.  



세계사를 바꾼 역사 속, 유명한 전쟁사 20개 (상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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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ttle_of_Kosovo,_Adam_Stefanović,_1870

역사 속에서 세계사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좌우했던 건 큰 전쟁들이었는데요. 가까이로는 제1~2차 세계대전이 사실상 현대의 세계정세를 결정지었다고 하죠. 고대 역사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를 바꾼 역사 속 유명한 20개의 전쟁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번엔 그 첫 번째 시간(상편)입니다.



살라미스 해전(The Battle of Salamis) 480 BC

Painting-The-Battle-of-Salamis[goodfreephotos.com]

Battle-of-Salamis-Map[wikipedia.org]

그리스 연합 해군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고대 시대 최대의 제국이었던, 페르시아 제국의 대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는데요. 그리고 이는 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죠. 이후부터, 그리스는 오랫동안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답니다. 살라미스 해전은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세계 3대 해전' 중 하나이기도 해요.


가우가멜라 전투(The Battle of Gaugamela) 331 BC

Battle-of-Gaugamela-331-BC[about-history.com]

The-Battle-of-Gaugamela-Map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 [redsearch.org]

BC 333년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 지중해 동부 연안과 이집트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페르시아 제국의 심장부 메소포타미아 가우가멜라(지금의 이라크 모술) 평원의 전투에서도 격전 끝에 승리를 거뒀답니다. 이 전투의 결과로 고대 세계사 최대의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헬레니즘 제국이 탄생하게 되죠.  


자마 전투(The Battle of Zama) 202 BC

Painting-The-Battle-of-Zama[wikipedia.org]

Second-Punic-War-map제2차 포에니 전쟁 [sites.google.com/site/rometloja]

카르타고 인근, 자마 전투는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벌였던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종결시킨 전투였는데요. 로마 코 앞까지 진격하며 로마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이 전쟁에서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만답니다. 가장 강력한 적을 거꾸러트린 로마는 지중해에서 그 적수를 찾기 힘들어졌죠. 


파르살루스 전투(The Battle of Pharsalus) 48 BC

Painting-The-Battle-of-Pharsalus[thetavernknight.wordpress.com]

The-Battle-of-Pharsalus-Map[warfarehistorynetwork.com]

당시, 로마는 카이사르,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3명의 실권자에 의한 '3두체제'였었는데요. 크라수스의 죽음 이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패권을 놓고 내전을 벌이게 된답니다. 그리스 파르살루스 평원에서의 전투의 승리로 카이사르는 유일무이한 권력자가 됨과 동시에, 공화정의 붕괴가 시작되었고, 로마 제국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했죠. 


투르 푸아티에 전투(The Battle of Tours) 732

Painting-The-Battle-of-Tours[historyhit.com]

The-Battle-of-Tours-map[kitchendecor.club]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되어 북아프리카, 지중해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 서유럽으로 거침없이 진격하던 이슬람군은 프랑스 투르, 푸아티에 지역에서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마르텔에게 대패하며 마침내 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답니다. 이슬람의 서유럽 진출은 이후 지지부진하다 결국 얼마 못가 쫓겨나고 말았죠. 




탈라스 전투(The Battle of Talas) 751

Painting-The-Battle-of-Talas[quora.com]

The-Battle-of-Talas-map중앙아시아를 두고 벌어진 당vs이슬람 [hipponation.org]

실크로드 교역을 지배하기 위해 서진하던 중국 당나라와,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 진출을 노리고 있던 이슬람 압바스 왕조가 탈라스 강에서 맞부딪혔는데요. 승승장구하던 당나라 고선지 장군(고구려 유민 출신)의 패배로, 당나라는 서역의 패권을 상실했고, 중앙아시아는 이슬람화 되었죠. 세계사적으로는 포로들에 의해 중국의 제지 기술이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답니다. 


하틴 전투(The Battle of Hattin) 1187

Painting-The-Battle-of-Hattin[elgrancapitan.org]

[예루살렘 왕국의 몰락을 보여준 영화 'Kingdom Of Heaven']
십자군 전쟁으로 성지 예루살렘을 되찾고, 예루살렘 왕국을 건국했던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에 의해 이스라엘 하틴의 뿔 지역 전투에서 참패하며, 예루살렘을 내주고 말았는데요. 이후, 예루살렘은 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이슬람의 세력에 속하게 되었답니다.(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의 협상에 의한 단기간의 형식상 영토편입 예외)

레그니차 전투(The Battle of Legnica) 1241

Painting-The-Battle-of-Legnica[arstechnica.com]

Map-mongol-invasions-of-europe풍전등화에 직면했었던 유럽 [attwiw.com]

유라시아 대륙 동쪽에서부터 파죽지세로 서진하던 몽골 제국의 말발굽은 칭기즈칸 사후 잠시 멈칫 했지만, 그의 아들 오고타이칸에 의해 다시 서방 원정이 시작되었는데요. 바투가 이끄는 몽골 원정군은 폴란드 레그니차 지역에서 유럽 연합군을 대파하게 된답니다. 뒤이어 모히 전투에서도 몽골 원정군이 대승을 거두자, 전 유럽은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죠.(오고타이칸의 죽음으로 회군하지 않았다면, 세계사는 정말 크게 바뀌었을지도...)


아인잘루트 전투(The Battle of Ain Jalut) 1260

Painting-The-Battle-of-Ain-Jalut[politicalviolenceataglance.org]

The-Battle-of-Ain-Jalut-map[archive.aramcoworld.com]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평정하며, 세계사 사상 가장 공포스러운 정복활동을 펼치던 몽골 제국군의 말발굽은 마침내 예루살렘 인근의 아인잘루트에서 이슬람 맘루크 왕조에 의해 멈춰서게 되는데요. 이는 몽골 제국의 서방 원정이 크게 좌절되었던 상징적인 첫 사례가 되었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몽골 기병의 아성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왔답니다. 이후, 몽골 제국의 분열과 맞물려 서방 원정은 막을 내리게 되었죠.


오를레앙 전투(The Siege of Orleans) 1428~1429

Jeanne-d'Arc-The-Siege-of-Orleans[wikipedia.org]

Hundred-Years'-War-map100년 전쟁의 타임라인 [ks3historyhelp.weebly.com]

1337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00년이 넘게 프랑스와 영국은 '백년전쟁'을 치뤘었는데요. 절박한 상황에 몰렸던 프랑스는 핵심 거점이었던 오를레앙에서 영국군에 포위를 당해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는 상황이었죠. 이때 등장한 이가 바로 그 유명한 성녀 잔 다르크였답니다. 잔 다르크는 오를레앙 전투에서 프랑스를 구원해내고 이후 백년전쟁의 향방을 바꿔버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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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세계사를 바꾼 역사 속, 유명한 전쟁사 20개 (하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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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지배한 해양 강국(maritime power)

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16세기 월터 롤리가 남긴 유명한 격언대로 세계사를 돌이켜 보면, 시대를 지배한 역사적인 강국들은 바로 바다를 지배한 해양 강국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는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는 중국의 해양굴기를 보더라도 알 수 있죠. 이번엔 세계 역사에서 해양 강국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나라들을 소개하려고 해요.



고대 그리스(Ancient Greece)

greek_colonies_historyB.C. 550년경 고대 그리스 [arch.mcgill.ca]

고대 지중해 곳곳에 식민지를 세우며 그리스 문명을 퍼트리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제패한 대제국 페르시아 제국을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에서 꺾다.



카르타고(Carthage)

Ancient_Carthage_map_historyB.C. 264년 강성한 카르타고 [ancient.eu]

고대 지중해 통상 무역을 좌지우지하던 페니키아인들의 위대한 해상 국가(현재의 튀니지)


아프리카 해안, 대서양 연안, 아일랜드까지 해상 교역의 무대를 넓히다.



로마 제국(Roman Empire)

WorldRomanEmpireB.C. 44 ~ A.D. 117 로마제국 [geoawesomeness.com]

카르타고와의 100여 년 포에니 전쟁 승리로 고대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해양 강국으로 거듭나다.


지중해를 내해로 두었던, 고대 서양 문명을 대표하는 대제국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바이킹 족(Viking)

Europe_viking_incursions_map_history843년경 바이킹의 유럽 침공 [wikipedia.org]

세계사 속 최강의 해양 민족, 대항해시대 이전의 바이킹시대(8세기 말~11세기 말)를 열어젖히다.


고향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출발하여, 북해, 발트해, 지중해, 흑해까지 지배한 공포의 대명사.



베네치아, 제노바(Venice, Genoa)

Genoa_vs_Venice_trade_routes_history13~14세기 제노아(빨강)vs베네치아(녹색) [wikipedia.org]

이탈리아의 해양 강국 라이벌 도시국가, 중세시대 동지중해의 독점적인 무역 패권을 두고 다투다.


일개 도시국가로서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을 눌렀고, 오스만제국과도 동지중해 제해권을 경쟁하다.



스리위자야 왕국(Srivijaya Kingdom)

Srivijaya_Empire_AD 8th century8세기경 스리위자야 왕국 최대 강역 [wikipedia.org]

인도와 중국을 잇는 천혜의 해상교통 요지인, 말라카 해협과, 순다 해협을 지배한 동남아 최대의 해상 왕국


동서 해상 교역의 중심지로 이슬람 제국과 중국 당나라 상인들이 진출하다.



포르투갈, 스페인(Portugal, Spain)

Portugal-Spain-Treaty of Tordesillas1494년 세계를 나눈 '토르데시야스 조약' [vividmaps.com]

15세기~16세기 세계사의 한 획을 그었던 대항해시대를 지배한 최고의 해양 강국 라이벌


신대륙과 희망봉의 발견 등 위대한 탐험을 주도함과 동시에, 전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부를 누리다.


【토르데시야스 조약(1494년)】

"카보베르데 서쪽 370레구아 떨어진 지점에 남북으로 선을 긋고, 그 선의 서쪽에 속한 모든 땅은 에스파냐(스페인)에 속한다. 그 선의 동쪽에 속한 모든 땅은 포르투갈에 속한다"



네덜란드(Dutch Empire)

Dutch Trade Routes 17th Century17세기 해상 무역을 장악한 네덜란드 [sutori.com]

16세기 후반 스페인로부터 독립한 후, 신생 국가다운 혁신적인 정책으로 세계 해운업과 해상무역을 제패하다.


황금기였던 17세기 중반에는 세계 무역선의 무려 75%가 네덜란드 선박



영국(British Empire)

The_British_Empire_territory_map_history_19th century19세기경 세계를 지배한 대영제국 [wikipedia.org]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른 칼레 해전, 4차례의 영란전쟁(네덜란드) 승리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서막이 오르다.


지구 육지의 약 1/4에 달하는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식민지)를 지배한, 세계사 속 최강의 해양 강국




『세계사 속, 해양강국 번외편』


신라 ~ 장보고의 청해진

장보고 청해진9세기 장보고 청해진 [contents.history.go.kr]

9세기 초중반 동아시아 바다를 지배하여 해상 무역의 패권을 잡다. 


한국 역사상 가장 넓은 제해권으로 해상 왕국으로 불리다.



명나라 ~ 정화의 남해원정

zheng he voyages map15세기 정화의 대항해 남해원정 [factsanddetails.com]

15세기 초, 시대를 초월한 대함대로 구성된 7회에 걸친 남해 대원정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다.


동남아시아, 인도, 아리바아 반도, 아프리카에까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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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속에 정말 잃어버린 대륙이?!

동경하는 요우 캐릭터

단 과학 기술의 발달로 지구상의 모든 육지의 비밀은 사실상 남극대륙 같은 일부를 제외하곤 모두 낱낱이 밝혀진 상태, 하지만 여전히 심해의 바다 속은 아직 미지의 세계로 남겨져 있는 곳이 많죠. 전설로 내려오는, 혹은 실체가 밝혀지고 있는 미지의 잃어버린 대륙들을 소개합니다. :D



아틀란티스(Atlantis)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잃어버린 대륙

atlantis continent대서양에 정말 아틀란티스가?! [ancient-code.com]

the lost atlantis painting history[faena.com]

아틀란티스는 BC 4세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저서 대화편 '크리티아스'에서 처음 언급한 고대 문명으로, 이는 아틀란티스에 대한 사실상 유일한 역사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가문의 어른이었던 솔론이 이집트 사제와 나눴던 대화에서 아틀란티스가 등장한답니다.


atlantis painting플라톤의 묘사에 따른 아틀란티스 모습 [faena.com]

The lost atlantis history[thetruthhunter.com]

과거 멸망한 훌륭했던 문명들의 예시로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나오는거죠. 플라톤 이후, 고대에서부터 현대에까지 많은 학자들이 아틀란티스의 실체를 찾아 헤매었지만, 아직까지도 고고학의 마지막 최후의 성배로 남아있답니다.


the lost atlantis continent그리스 테라섬(산토리니) [disqus.com]

bimini_road_atlantins underwater history바하마 비미니로드 [realunexplainedmysteries.com]

고대 세계 최대의 도서관이 있던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도 끝내 밝혀내지 못했지만, 플라톤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할 학자가 아니라는 점과 아틀란티스로 추정되는 여러 전설들과 흔적들로 인해 꽤나 진지한 주제로 여겨진답니다.(트로이 전설도 사실로 판명되었으니..) 


"경이로운 제국의 심장 아틀란티스는 헤라클레스 기둥이 있는 해협(지브롤터 해협)의 서쪽에 있었다." - 플라톤 -



레무리아(Lemuria)

인도 신화와 여우원숭이 가설 사이에서..

Kumari Kandam(lemuria continent)[wikipedia.org]

kumari kandam(lemuria) history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레무리아 [crystalinks.com]

1864년 영국의 동물학자 필립 스클래터는 인도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섬, 인도, 동남아의 말레이 반도에 서식하는 여우원숭이(lemur)의 분포를 근거로한 가설로 레무리아 대륙을 주장했는데요.


lemuria Lemuriformes가설의 시초가 된 여우원숭이 [wikipedia.org]

lemuria continent history[exploremyindia.in]

실제로 19세기 후반의 지질학자들은 이미 인도와 남아프리카 대륙이 과거에 서로 연결되어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했었다고 해요. 거기다 남인도의 고대 전설에서는 레무리아를 언급하는 듯한 비슷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오고 있었죠. 


kumari kandam(lemuria) remains남인도의 흥미로운 흔적들 [everythingaroundme.blogspot.kr]

하지만 1912년 독일의 지구물리학자 알프레트 베게너의 저 유명한 '대륙이동설'로 인해, 레무리아 가설은 설득력을 잃게 되었고, 마다가스카르섬과 인도 대륙의 지질학적 유사성은 발견되지 않고 있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비로운 레무리아의 전설은 인도에서 꽤나 흥미로운 주제이죠. 




무대륙(Mu lost continent)

원주민들의 전설 속 잃어버린 대륙

lost Continent of Mu, Atlantis태평양의 아틀란티스, 무대륙 [crystalwind.ca]

Continent of Mu map[lemuria.net]

1926년 전 세계 고고학계에 큰 파문이 이는 사건이 벌어지는데요. 영국인 예비역 대령 제임스 처치워드가 '잃어버린 무대륙(The Lost Continent of Mu)' 을 발표한 것이죠. 인도 원주민들의 전설을 기반으로 50여 년간 세계 각지의 자료를 수집한 결과물이랍니다.


james churchward[histoiresecretedestempliers.com]

lost Continent of Mu james churchward[blog.my-mu.com]

lost Continent of Mu james churchward scrapbook무대륙의 흔적이라는 증거들 [blog.my-mu.com]

무대륙은 제임스 처치워드 이전에 그 어떤 역사기록도 없었지만, 그가 수집한 정리한 자료들이 워낙 구체적이었고 설득력이 있어서 큰 화제가 되었었죠. 힌두교 사원 등에서 입수한 형이상학적인 점토판, 상형문자 점토판, 고대문헌들...


Lost empire of Mu[crystalwind.ca]

Yonaguni-Monument-Mu continent요나구니 유적이 무대륙의 흔적?! [science-rumors.com]

BC 11~12세기경 무대륙이 침몰하기 전까지, 10여 개의 민족, 약 6,400만명의 인구가 무제국 왕실의 지배 속에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이뤘다고 하는데요. 그에 따르면 무제국의 후손들이 아시아, 마야, 잉카 문명을 이뤘다고 해요. 그래서 아시아와 중남미권의 문명이 유사성을 띈다는 것! 하지만 그 신빙성에는 의문이 많답니다.



도거랜드(Doggerland)

유럽과 영국을 이었던 잃어버린 땅

Doggerland history[wikipedia.org]

Doggerland life history(Laura Spinney)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도거랜드 [zmescience.com]

북해의 도거랜드는 레무리아, 무대륙, 아틀란티스와 달리 그 실체가 입증이 되었는데요. 엄밀히 말하면, 잃어버린 대륙이라기 보다는 유렵대륙과 영국을 잇는 육지였다고 보는게 맞을 것 같아요. 지금은 도거랜드라는 말 보다는 세계적인 어장 '도거뱅크'(평균수심 20~30m)로 익숙하답니다.


Doggerland underwater[corkuyvenhoven.nl]

Doggerland mammorth skull매머드의 잔해도 발견된다 [thenaturalhistorian.com]

도거랜드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17세기 네덜란드 어부들에 의해서였는데요. 매머드 같은 멸종된 동물들의 잔해가 발견이 된거죠. 처음엔 잃어버린 세계의 흔적들을 믿지 못했지만, 19세기 부터는 점차 그 잃어버린 세계의 존재가 인정받기 시작했답니다.


Doggerland history유럽과 영국은 본래 하나 [ancientpatriarchs.wordpress.com]

도거랜드에서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BC 10000년경 중석기 시대의 기간 동안 문명의 흔적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데요. BC 6500~6200년경 해수면의 상승과 해저 산사태로 지진 해일 등이 이어지면서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었죠. 그래도 BC 5000년까지는 일부 고지대가 섬의 형태로든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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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이 △△라면

한국 최초의 ○○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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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고민

역사에 평소에 관심 없는 분들이라도 한 번쯤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보셨을 텐데요. 세계 역사와 한국 역사를 비교하는 것은 언제나 참 재미있는 일이죠. 이번엔 세계 최초와 한국 최초를 찾는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10가지를 소개해볼까 해요.



세계 최초의 자판기 vs 한국 최초의 자판기 

vending machine history세계 최초의 자판기 도안 [wacowny.com]

[헤론의 성수 자판기 다큐 영상 Heron of Alexandria]

세계 최초의 자판기는 B.C. 215년경 발명가 헤론의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신전 성수(聖水) 자판기였다.


최초의 국산 자판기 금성 GVK-204HS최초의 국산 자판기 금성 GVK-204HS [vending.co.kr]

한국 최초의 자판기는 1977년 롯데산업이 서울 지하철 1호선에 설치한 커피 자판기였다.(일본 샤프사 수입)



세계 최초의 우표 v한국 최초의 우표

세계최초의 우표 stamp history세계 최초의 우표 [stamp.epost.go.kr]

세계최초의 우표 stamp history빅토리아 여왕을 본뜬 우표 시안 [stamp.epost.go.kr]

세계 최초의 우표는 1840년 영국 로랜드 힐에 의해 빅토리아 여왕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졌다.


한국 최초의 우표일본의 영향을 받은 한국 최초의 우표 [stamp.epost.go.kr]

한국 최초의 우표는 1884년 홍영식 등의 신진 개혁파에 의해 우정총국이 개설되며 '문위우표'가 만들어졌다.



세계 최초의 잡지 vs 한국 최초의 잡지

Journal des savants, history of magazines세계 최초의 잡지 'Journal des savants' [revistapesquisa.fapesp.br]

세계 최초의 잡지는 1665년 프랑스의 주간 과학잡지 '주르날 데 사방'이다. 


한국 최초의 잡지, 대죠션독립협회회보독립협회가 만든 한국 최초의 잡지 [museum.magazine.or.kr]

한국 최초의 잡지는 1896년 독립협회의 서재필이 창간한 '대죠션독립협회회보'이다.



세계 최초의 호텔 vs 한국 최초의 호텔

Feathers Hotel, the first hotel세계 최초의 호텔 'Feathers Hotel' [wikipedia.org]

세계 최초의 호텔은 1619년 영국 슈롭셔 러들로에 세워진 '페더즈 호텔'이다.


한국최초의 호텔, 대불호텔한국 최초의 호텔 '대불호텔' [chf.or.kr]

한국 최초의 호텔은 1888년 일본인 호리 리키타로가 인천에 세운 '대불호텔'이다.



세계 최초의 사진 vs 한국 최초의 사진

View from the Window at Le Gras, the first photo세계 최초의 사진 'View from the Window at Le Gras' [wikipedia.org]

세계 최초의 사진은 1826년경 프랑스의 조세프 니세포르 니에프스가 촬영한 '르 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본 조망'이다.


한국 최초의 사진 the first korean photo한국 최초의 사진 '조선의 청나라 사절단' [kppa.co.kr]

한국 최초의 사진은 1863년 조선의 청나라 방문 사절단이 러시아 사진작가에 의뢰해 촬영한 사진이다.



세계 최초의 롤러코스터 vs 한국 최초의 롤러코스터

Les montagnes russes de Belleville세계 최초의 롤러코스터 Les montagnes russes de Belleville [coastersworld.fr]

The Promenades-Aeriennes세계 최초의 롤러코스터 The Promenades-Aeriennes [coastersworld.fr]

세계 최초의 롤러코스터는 1817년 프랑스 파리의 '르 몽테그 루세 아 벨빌', '프로메나데 아리엔느'이다.  


어린이대공원 청룡열차한국 최초의 롤러코스터 '청룡열차' [kto.visitkorea.or.kr]

한국 최초의 롤러코스터는 1973년 5월 5일 서울어린이대공원 개장과 함께 공개된 '청룡열차'이다.




세계 최초의 홈페이지 vs 한국 최초의 홈페이지

the world's first website CERN세계 최초의 홈페이지 CERN [timeline.web.cern.ch]

세계 최초의 홈페이지(웹사이트)는 1990년 12월 20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팀 버너스 리가 만든 'http://info.cern.ch/hypertext/WWW/TheProject.html'이다. 


한국 최초 웹 사이트 cair.kaist.ac.kr한국 최초의 홈페이지 'cair.kaist.ac.kr' 1996년 12월 모습 [web.archive.org]

한국 최초의 홈페이지(웹사이트)는 1994년 KAIST의 인공지능 연구센터의 석사과정이었던 김병학이 만든 'cair.kaist.ac.kr'이다.



세계 최초의 영화 vs 한국 최초의 영화

[세계 최초의 영화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5)]

세계 최초의 영화는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그랑 카페에서 상영한 '열차의 도착'이다.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구토 신문광고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 신문광고 [wikipedia.org]

한국 최초 영화관 단성사한국 최초의 영화관 '단성사' [seoulstory.kr]

한국 최초의 영화는 1919년 10월 27일 김도산 감독이 종로 단성사(한국 최초 상설영화관)에서 상영한 '의리적 구토'이다.(10월 27일은 영화의 날로 제정되었다)



세계 최초의 기업 vs 한국 최초의 기업

early 1900's Kongo Gumi-japan company history20세기 초, 곤고구미의 노동자들 [wikipedia.org]

세계 최초의 기업은(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578년경 설립된 일본의 '곤고구미' 목조 건축회사이다.


Shitennoji 시텐노지(사천왕사)곤고구미 첫 프로젝트, 시텐노지(사천왕사) [wikipedia.org]

한국 최초의 기업도(한국인의 가장 오래된 기업) 곤고구미이다. 설립자인 유중광(곤고 시게미쓰)은 백제인!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 vs 한국 최초의 방탄조끼

면제배갑 bulletproof vest history세계 최초이자 한국 최초의 방탄조끼 면제배갑 [metmuseum.org]

세계 최초의 방탄조끼는 1866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만들어진 '면제배갑'이다. 세계 최초가 곧 한국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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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이룬, 세계 역사의 정복자 8인

'제멋대로 우주랭킹'에서 '멜로요우' 작성함 2017. 2. 20. 00:30

세계 역사의 정복자 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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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를 관통한

세계 지도를 바꿔버린

거대 제국의 정복자 8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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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 / 독일 제3제국

히틀러 Adolf Hitler나치 독일의 수장 아돌프 히틀러 [wikipedia.org]

히틀러 나치 독일 Adolf Hitler Nazi Germany나치 독일의 유럽 지배 [deviantart.com]

아돌프 히틀러는 역사상 가장 악랄했던 정복자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상실감에 빠진 독일에서 나치즘으로 정권을 잡은 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며 한때 대부분의 유럽을 정복하기도 했었답니다. 현대사의 악의 화신...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 ~ 1821 / 프랑스 제1제국

나폴레옹 Napoleon I프랑스 제국의 황제 나폴레옹 [wikipedia.org]

나폴레옹 제국 Napoleon Empire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westpoint.edu]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 제국의 황제이자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였는데요.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스러웠던 프랑스를 빠르게 안정화시킨 뒤 연이은 정복활동으로, 섬나라인 영국을 제외한 사실상 전 유럽대륙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답니다.


티무르(Timur, Tamerlane)

1336 ~ 1405 / 티무르 제국

티무르 Timur, Tamerlane제2의 칭기즈칸(?), 티무르 [timuraksak.tumblr.com]

티무르 제국 Timur, Tamerlane Empire티무르 제국 [periklisdeligiannis.wordpress.com]

티무르는 몽골 제국의 후예 중앙아시아를 제패했었던 불패의 정복왕(우즈베키스탄의 영웅)이었는데요. 중동의 강자였던 오스만 제국을 격파하기도 했었답니다. 그의 현손이 세운 나라가 19세기 중반까지 인도를 지배한 무굴 제국이죠.


알-왈리드 1세(Al-Walid I)

668 ~ 715 / 이슬람 제국

알-왈리드 1세 Al-Walid I Umayyad Caliph왈리드 1세 [histoireislamique.files.wordpress.com]

알-왈리드 1세 영토 Al-Walid I Umayyad Caliph territory이슬람제국 우마이야 왕조의 영토 [reddit.com]

알-왈리드 1세는 우마이야 왕조 제 6대 칼리프로, 우리가 이슬람 제국으로 흔히 알고있는 최전성기의 영토를 확장했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슬람은 서로는 북아프리카를 넘어 이베리아 반도까지, 동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했었답니다.


아틸라(Attila the Hun)

406 ~ 453 / 훈족

아틸라 훈 Attila the Hun신의 징벌자 아틸라 [perdurabo10.net]

아틸라 훈 영토 Attlia the Hun territory아틸라의 훈제국의 정복 [sheppardsoftware.com]

아틸라는 '신의 징벌'이라는 무시무시한 별칭으로 로마제국과 유럽을 공포에 빠뜨렸던 훈족의 왕으로, 서로는 독일의 라인강에서 동으로는 중앙아시아의 카스피해에까지 그 세력을 떨쳤답니다. 훈족에게 쫓긴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은 결국 서로마 제국을 멸망에 이르기까지 했죠.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56 ~ BC 323 / 헬라 제국

알렉산더 대왕 Alexander the Great_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더 대왕 [wikipedia.org]

알렉산더 대왕 영토 Alexander the Great territory헬라 제국의 강역 [bible-history.com]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는 그리스를 넘어 페르시아, 인도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었는데요. 키루스 대왕이 이룩한 페르시아 제국도 바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했죠. 그리스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 위대한 왕이랍니다.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

BC 585 ~ BC 529 / 페르시아 제국

키루스 대왕 Cyrus the Great Persian Empire세계 최초의 대왕 키루스 2세 [iranchamber.com]

키루스 대왕 페르시아 제국 Cyrus the Great Persian Empire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 [crystalinks.com]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는 인류역사상 최초의 제국인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을 건설한 왕으로, 그 과정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 최강국이었던 바빌로니아 왕국을 무너뜨리기도 했답니다. 무려 23개의 나라를 지배했었죠.


칭기즈칸(Chingiz Khan)

1162 ~ 1227 / 몽골 제국

칭기즈칸 Chingiz Khan_인류사 가장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 [wikipedia.org]

칭기즈칸 몽골제국 Chingiz Khan Mongol Empire유라시아를 지배한 몽골 제국 [mongolia-trips.com]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타임지 선정 13세기의 인물. 칭기즈칸! 몽골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을 전역을 가로지르는 어마어마한 영토를 차지했었는데요.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단일 제국의 탄생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 교류를 활발하게 만들어 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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